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바쿠닌 (문단 편집) == 여담 == * 그는 수많은 명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신과 국가》를 제외하곤 책을 제대로 완결한 적이 없다. 이는 바쿠닌이 이론가보다 행동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연유로 그의 저술 중 한국어로 완역된 것은 아직까지 없다. 대신 [[에드워드 카]]가 지은 《미하일 바쿠닌》 평전이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문제는 E. H. 카가 원래 대중들을 대상으로 책을 쓰는 게 아닌 사람인 것도 있고, 분량도 번역된 책 기준 700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으면 완독하기 버겁다. * 미국 캘리포니아의 [[https://en.wikipedia.org/wiki/AK_Press|AK press]]에서 미하일 바쿠닌의 글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8권 분량의 전집을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그의 저서들이 영어로 번역,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있다. 다만 이는 영어권에서 바쿠닌을 무시해서는 아니다. 바쿠닌이 강경 반유대주의자라서 미국 학계에서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후술할 이유가 더 크다. '''쉽게 말해서 바쿠닌은 라이벌 마르크스와 성격상 공통점이 많았다.'''[* 일부 아나키스트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는 90%가 같고 10%가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바쿠닌의 영향이다. 그는 확고한 유물론자였고 그렇기에 마르크스와 함께 1인터에서도 같이 활동해갔으며 오직 단 하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시하는 과도기의 대한 입장차이 때문에 둘이 갈라섰다. 그의 저서 우리의 강령, 국가 없는 사회주의: 아나키즘에서의 공산주의 비판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 독재]]관련인 것도 이런 이유다.] 바쿠닌도 마르크스처럼 글은 잘 쓰는데, 글을 잘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하는 일을 못하는 편이었다.[* 당장 그의 저서중 하나인 신과 국가부터가 각주 '''하나'''의 분량이 2~3페이지를 넘어가는 분량을 가질 정도다.][* 러셀 曰 "문체에서 일종의 아나키즘이 느껴진다."] 그나마 마르크스의 경우 그의 친구 엥겔스가 수십년동안 마르크스가 쓴 글들을 일일이 꼼꼼하게 편집하고 정리라도 해주었지,[* 엥겔스는 마르크스 대신 신문 기사를 대필(...)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자이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독일어로 쓴 글이 영어, 러시아어 등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번역에 도움을 주고 검토 작업을 맡은 것도 엥겔스 몫이었다.] 바쿠닌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동안 장기간 체계적으로 그의 글을 편집, 정리해 줄 수 있는 친구도 없었고, 그의 제자들도 그와 노선 차이로 싸우고 다투는 일이 많았다. 만약에 바쿠닌이 엥겔스 같은 친구를 만났다면 그 역시 《자본론》 시리즈 비슷한 저작들을 출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가 엥겔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르크스 역시 미하일 바쿠닌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삶면서 이런저런 단편적인 글들만 남기고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 바쿠닌이 1849년 드레스덴에 있을 때 [[리하르트 바그너|바그너]]가 지휘하던 공연을 봤고 그들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특히 바쿠닌은 바그너가 지휘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베토벤)|9번 교향곡]]을 좋아했고, 바그너에게 "전세계에 큰 불길이 일어나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음악이 사라져야 한다고 해도 이 교향곡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맹세를 해야 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웬만해서는 무던한 성격을 지녔던 바그너도, 우람한 체격에 남을 압도하는 모습을 지닌 이 야만인(!) 곁에 서 있으면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 없이 느껴질 정도로 위압감을 느꼈다고.. * [[인터내셔널#s-3.1|제1인터내셔널]]에 가담하던 시기인 [[1869년]]에 《[[공산당 선언]]》의 러시아어 초판본을 발간하기도 하였으며, 이는 [[1882년]]에 발간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의 번역본보다도 이른 것이다.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8/communist-manifesto/preface.htm#preface-1882|관련 글 1]], [[https://ko.wikisource.org/wiki/번역:공산당_선언/1890년_독일어판_서문|관련 글 2]]. * 그는 [[범슬라브주의]]를 옹호하는 [[민족주의]]적 발언도 몇 남긴 적 있으며[* 막스 네틀라우 - 아나키즘과 민족주의(Анархизм и национализм)에서는 바쿠닌은 열렬한 범슬라브주의적 민족주의를 지원가였고 연방제적 민족주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카를 마르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민족]]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한다며 비판한 적도 있다. 출처: M. A. 바쿠닌. 1872년 브뤼셀 신문 La Liberte에 보낸 편지]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프리메이슨]]을 [[아나키즘]]혁명을 위한 일종의 비밀결사 조직으로도 활용하려고 한 적도 있다.[[http://vivovoco.astronet.ru/VV/BOOKS/BAKUNIN/CHAPT06.HTM|#]] 이 때문에 종종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블랑키주의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혁명은 노동계급을 설득하여 그들을 혁명으로 끌고 오는 것에 있었던 반면에, 블랑키주의(Blanquism)는 소규모의 비밀결사가 조직적이고 비밀스런 공모로 혁명을 달성해야 한다는 개념을 가리킨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블랑키주의자가 노동계급과의 융합을 충분히 이루어내지 못한 혁명가로 봐서 멸시했다.]라는 멸칭으로 까이기도 한다. * 러시아인이었지만 폴란드 독립운동에 호의적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얻은 부인이 폴란드인이었으며, 1863년 1월 폴란드 봉기 때 '''반러''' 독립군에 합류하는 것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봉기에 나섰던 폴란드 사람들은 반-부르주아가 아니라 반-러시아주의로 뭉쳤기 때문에, 러시아인이었던 바쿠닌을 대놓고 배척하였고, 바쿠닌은 이에 실망하여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활동기 초중반, 슬라브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세상에 아나키즘을 퍼뜨릴 생각을 하였던 것과 비교해보면, 후반기 그의 활동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한 그 어떠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 [[김제동]]이 [[오늘밤 김제동]]에서 [[전원책]]과 대담 도중에 전원책이 바쿠닌을 언급하자, 김제동은 바쿠닌이 누군지 몰랐고 이를 답답하게 여긴 전원책이 바쿠닌을 러시아 사람이라고 설명하자 갑자기 김제동이 아는 척을 하며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소련|USSR]] 사람'''이라고 우기며 성질을 낸 적이 있다.[[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2008260046737638&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pos=&sig=h6jTGg-Yih6RKfX2h6jXGY-gKmlq|#1]][[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nemo38&logNo=221413811446|#2]][* 전원책 변호사 말대로 바쿠닌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약 '''40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전원책이 "[[카를 마르크스|마르크스]]와 싸웠던..."이라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김제동이 "--소련--'유에스에스알' 때 사람 아니냐"며 "제대로 알고..." 라며 역으로 다그치는 모습이 볼 만하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소련 성립 전 [[러시아 제국|러시아 '''제국''']] 사람이다.] 이때 전원책이 바쿠닌을 극우라고 불러서 전원책도 뻘짓을 했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전원책은 방송에서 일관되게 바쿠닌을 좌파라고 소개했고, 극우가 아니라 '거구'였다고 말한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 스페인 미니어쳐 게임 [[인피니티(게임)|인피니티]]의 [[노매드]] 소유의 함선들 중 [[바쿠닌 관할군]]이 소속된 함선 '바쿠닌 호'의 명칭을 이 사람으로부터 따왔다, 노매드의 떠돌이 아나키즘 성향에 걸맞는 작명. [각주] [[분류:러시아의 철학자]][[분류:1814년 출생]][[분류:1876년 사망]][[분류:트베리 주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